•  
  •  
  •  
  •  
  •  
  •  
  •  
  •  
  •  
  •  
분류
RNS 콜 테러 사건
RNS Cole Terrorist Attack
파일:RNS_콜_테러.jpg
발생 시기
2000년 10월 12일
발생 장소
유고랜드 시디벨 신항
사건 유형
자살 폭탄 테러 / 군사시설 공격 / 대테러 사건
가해 세력
알후라 알자마아(Al-Hura al-Zama)
고랜드계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피해 규모
루이나 해군 장병 17명 사망, 39명 부상
구축함 선체에 대형 파손 발생
사건 경과
테러 준비
알후라 알자미야 조직원들이 폭약을 실은 소형 보트를 이용해 계획 수립.
공격 실행
2000년 10월 12일, 보급을 받던 RNS Cole 근처에 접근해 선체 좌현에 자폭 공격.
피해 상황
폭발로 구축함 선체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고, 해수 유입 및 다수 장병 사상자 발생.
긴급 대응
루이나·유고랜드 당국이 구조 작업을 벌였으나 사망자 17명, 부상자 39명 확정.
사후 처리
루이나 정부는 테러 조직 알후라 알자마아를 배후로 지목했으나, 곧바로 군사적 보복은 취하지 않음.
국제 반응
다수 국가들이 루이나에 조의를 표하며 테러 규탄 성명을 발표. 그러나 일부 중동·북아프리카 국가에서는 루이나의 해외 군사활동을 비판하는 여론도 제기됨.
여파
사건 직후 루이나 해군은 항구 정박 중 경계 절차를 강화했으나, 별다른 군사적 대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 개요2. 전개3. 여파

1. 개요 [편집]

RNS 콜 테러 사건(RNS Cole Terrorist Attack)은 2000년 10월 12일, 루이나 해군의 최신예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RNS Cole이 유고랜드 시디벨 신항에 정박하던 중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 사건이다. 고랜드계 극단주의 무장조직 알후라 알자마아(Al-Hura al-Jama‘a) 소속 대원들이 폭약을 실은 소형 보트를 구축함 좌현에 접근시켜 자폭 공격을 가하였다.

이 공격으로 루이나 해군 장병 17명이 사망하고 39명이 부상했으며, 선체에는 대형 파공이 발생해 함정은 장기간 수리에 들어갔다. 특히 알레이버크급은 루이나 해군의 첨단 다목적 구축함으로 홍보되던 함정이었기에, 사건은 군사적 충격뿐만 아니라 루이나 국내외 여론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 전개 [편집]

2000년 10월 12일 오전, 루이나 해군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RNS Cole은 유고랜드 시디벨 신항에 입항하였다. 함정은 아덴 만 일대에서 통상적인 작전을 수행한 뒤, 연료 보급과 보급품 인도, 경미한 정비, 그리고 승조원들의 휴식을 위해 항구 정박을 결정한 상태였다. 당시 루이나 해군은 유고랜드 당국과의 합의에 따라 항구 사용 권한을 확보했으며, 보급 작업은 정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었다.

현지 시각 오전 11시 18분, 작은 모터 보트 한 척이 항만 관리선으로 위장한 채 RNS Cole의 좌현으로 접근했다. 이 보트에는 두 명의 테러범이 탑승해 있었으며, 접근 과정에서 함정의 갑판에 있던 승조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웃는 등 친근한 제스처를 의도적으로 취했다. 이러한 위장 행동은 경계심을 무디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충돌 직전까지도 공격 의도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잠시 후 보트가 함정의 좌현 중앙부와 충돌하는 순간, 선체 내부에 적재된 고성능 폭약이 폭발하였다. 강력한 폭발은 순식간에 거대한 화염과 충격파를 일으키며 함정 내부를 휩쓸었다. 폭발 지점은 함의 연료·전력 계통과 가까운 위치였기 때문에 피해는 더욱 치명적이었다. 선체에는 직경 12미터가 넘는 거대한 파공이 발생했고, 주변 격실은 즉시 침수되었다.

폭발 직후 인근 구역에서 근무 중이던 장병들은 즉사하거나 중상을 입었으며, 폭풍으로 인해 갑판 위에 있던 승조원들이 바다로 튕겨져 나가기도 했다. 통신과 전력 계통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었고, 함정은 좌현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그러나 생존 장병들이 신속하게 수밀문을 폐쇄하고, 피해 구역을 격리하며 침몰을 가까스로 막는 조치를 취했다.

폭발 직후, 심각한 피해를 입은 RNS Cole은 자체적인 피해 통제와 응급 구조만으로는 장기적인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선체 좌현에는 지름 12m가 넘는 파공이 생겨 대량의 해수가 유입되었고, 발전기와 전력망 일부가 마비되어 정상적인 항해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승조원들은 신속하게 수밀문을 닫고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피해가 워낙 커서 외부의 지원 없이는 생존 장병과 함정을 모두 잃을 가능성도 있었다.

사건 직후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지원 세력은 영국 해군의 23형 호위함 HMS Marlborough였다. 당시 함정은 앤서니 릭스(Anthony Rix) 대령의 지휘하에 사비에트 앞바다에서 6개월간 임무를 마치고 귀항 중이었는데, 루이나 측의 구조 요청을 수신하자 즉시 항로를 변경해 시디벨 신항으로 회항하였다. Marlborough에는 본래부터 장기 해외 파병을 대비한 의무·피해통제 지원팀이 탑승해 있었으며, 이들은 RNS Cole에 승선해 응급치료와 배수 작업, 전력 계통 복구 등을 지원했다. 영국 해군의 신속한 지원은 구조 활동의 효율성을 크게 높였고, 현장 장병들의 사기를 유지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시에 유고랜드 당국은 인근 항만 시설을 긴급 개방해 부상자 후송을 도왔고, 프랑스 역시 협력에 나섰다. 가장 심각한 부상을 입은 루이나 해군 장병 11명은 프랑스 공군 수송기를 통해 유고랜드 북부에 위치한 프랑스 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들은 도착 직후 긴급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 추가적인 치료와 재활을 위해 독일 군 병원으로 재후송되었다. 국제적 협조에 따라 이송 과정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여러 명의 장병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한편, RNS Cole 자체는 자력 항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선체 구조적 손상과 엔진 계통 파괴로 인해 해상 이동은 거의 불가능했으며, 장기간 수리 없이는 다시 임무에 복귀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루이나 해군은 민간 초대형 반잠수식 수송선 MV Blue Marlin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 수송선은 해상에서 대형 함정을 직접 탑재할 수 있는 특수 설계를 갖춘 선박으로, RNS Cole은 시디벨 신항 인근에서 임시 보강 공정을 거친 뒤 블루마린 위에 실렸다.

블루마린은 수주일에 걸친 항해 끝에 파손된 구축함을 루이나 본국 해군 조선소로 안전하게 수송했으며, Cole은 이후 본격적인 정밀 수리와 개장 공정을 받았다. 이 과정은 약 14개월 이상 소요되었고, 함정은 구조적 보강과 함께 방어 체계, 근접 무장 강화 등을 포함한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3. 여파 [편집]

RNS 콜 테러 사건은 루이나 국내외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다. 우선 군사적으로, 사건은 최신예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조차도 항구 정박 시에는 비정규전·자살 공격에 취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그동안 루이나 해군은 첨단 대공전 능력과 이지스 시스템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소형 보트 한 척의 자폭 공격으로 17명이 사망하고 39명이 부상하는 참사를 겪으면서, 해군 전술과 방어 개념 전반이 재검토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루이나를 비롯한 다수의 해군은 항구 및 해역에서의 경계 태세를 크게 강화하였다. 기존에 20~30㎜ 구경의 근접방어무기(CIWS)가 주로 대공 요격에만 운용되던 것에서, 소형 고속정·자살 보트 같은 대수상 표적 대응 임무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루이나 해군은 전 함정에 M2HB 중기관총, 25㎜ 체인건, 소형 기관포를 증설하고, 항구 정박 시에는 현측에 경고 현수막을 걸어 “일정 거리 이상 접근 시 발포한다”는 규칙을 명문화하였다. 저격수를 포함한 무장 경계병을 갑판과 상부 구조물에 배치하는 것도 새로운 표준 절차가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 루이나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둔 시기였다는 점에서 더욱 민감한 논란을 불러왔다. 정부와 군은 사건 직후 알후라 알자마아를 배후로 지목했으나, 선거 국면에서 대규모 군사보복에 나서는 것은 부담이 컸다. 결국 루이나 정부는 제한적 대응과 경계 강화에 그쳤고, 이로 인해 여론은 “정부가 테러에 굴복했다”는 비판과 “불필요한 전쟁 확대를 피했다”는 옹호론으로 양분되었다. 야당은 이를 계기로 집권당의 대테러 정책 부실을 강하게 공격했지만, 집권 세력은 사건을 정치적 무기로 적극 활용하지 않고 조용히 선거를 관리하는 전략을 택했다.

국제적으로는 다수의 국가들이 루이나에 조의를 표하고 테러를 규탄했지만, 일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루이나가 해외에 지나치게 군사력을 개입시킨 결과”라는 반발 여론도 확산되었다. 특히 유고랜드와 고랜드에서는 루이나의 대테러 개입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며, 장기적인 지역 파병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사건 이후 알후라 알자마아는 루이나를 상대로 한 대표적인 테러 조직으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초강대국 루이나의 심장을 찌른 조직”으로 선전했고, 이는 조직 규모와 위상 확대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결과적으로 RNS 콜 테러 사건은 루이나의 군사·정치적 대응을 위축시키는 동시에, 알후라 알자마아를 세계적 테러 네트워크의 신흥 강자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함장이었던 커크 립폴드(Kirk Lippold) 중령은 모든 규정된 경계 절차를 준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군법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자살 공격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성격이 강했고, 함장이 규정된 수준 이상의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로써 립폴드 중령은 징계 없이 군 복무를 이어갔으며, 이후 2007년에 명예롭게 예편하였다.